(12.11.27) 경주 남산 산행!
제목: 남산 7대 보물과 불국사 늦가을 풍경!
[산행일: 2012년 11월 맑은날에...]
♬
[ 경주 남산 7대 보물을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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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은 금오산이라고도 부르며 북쪽의 금오봉과 남쪽의 고위봉, 두 봉우리 사이를
잇는 계곡 전체를 통칭, 남산이라고 부른다.
금오산 정상은 466m이고 남북 길이는 8km 동서의 너비는 4km이다.
얼마전 1박2일에서 유흥준교수와 함께 하는 경주 남산 문화재 탐방으로 많이 알려졌으며
7대보물 이외에 동남산쪽의 몇 문화재를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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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제1대보물 삼릉계곡 선각 육존불 (유형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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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불상은 남산에서는 드믈게, 선각으로 된 여섯 분의 불상이 두 개의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뒷쪽 바위에는 가운데 본존이 오른 어깨에만 법의를 걸치고 연꽃대좌에 앉아 있으며,
머리 둘레에만 두광을 새기고 몸 둘레의 신광은 새기지 않았으며, 왼손은
무릎에 얹고 오른손은 들어 올린 모습이다.
그 좌우에는 연꽃 대좌에 두광만 조각되고, 방울 3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한 보살 두분이
서 있는데 이 세 분을 석가삼존이라고 부른다.
앞쪽 바위에는 가운데 본존이 서고 좌우의 보살은 꿇어앉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본존은 연꽃 위에 서서 왼손은 아래에, 오른손은 위에서 서로 마주보게하고
두광만 조각되어 있다. 그 좌우의 보살상은 웃옷을 벗고 한족 무릎을 세운 모습이다.
이를 아미타 삼존이라고 한다.
오른쪽 암벽 위에는 당시 이들 불을 보호하기 위한 법당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있다.
- 이상 안내문 중에서... -
#. 세월의 흔적으로 선이 선명하지가 않다.
#. 불상 위 바위에는 빗물이 아랫쪽으로 흘러내리지 않도록 홈이 파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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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제2대보물 삼릉계곡 선각 여래좌상 (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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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불상은 높이 10m 가량되는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바위면의 중간쯤에 가로로 갈라진 홈이 파여 있는데, 위족에 불상을 조각하였으며,
연꽃 대좌의 홈 아래에 걸쳐 있다. 얼굴 부분은 돋음 새김을 하고 몸은
얕은 돋음 새김인데, 나머지 선으로 표현한 독특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다.
얼굴은 큼지막하고 넓적하게 표현하고 민머리 위에 상투모양을
크게 새겼는데 머리와 구분이 없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쳤으며 양손의 손묵까지 덮고 있다. 왼손은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붙이고,
오른손은 가슴 앞에 들어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붙이고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도록하여 왼손과 오른손이 마주하게 하였다.
바위 속에서 얼굴만 내민듯한 점이 특이하고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 이상 안내문 중에서... -
[(▼. 아래) 제3대보물 삼릉계곡 석불 좌상 (보물 제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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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의 삼릉계곡 중부능선쯤에 자리하고 있는 이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맺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석불좌상이다. 불상은 불두와 불신을 따로 제작하여 결합하였다
이 불상의 상호는 파손이 심해 대부분을 복원하였다.
불상의 몸은 당당하면서도 안전감 있는 신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가사는 왼쪽 어깨에만 두르고 오른족 어깨는 노출된 편단우견식으로 걸쳤는데,
이 가사는 얇게 몸에 밀착하여 신체의 윤곽 등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정강이에서 발목으로 옷주름이 비스듬히 흐르고 있다. 광대는 간결하면서도
섬세하게 새겨진 화염문과 당초문 등으로 보아 우수한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연화좌는 상대에 양연을 3단으로 새겼는데, 꽃잎 안에 다시 꽃잎을 새겼다.
이 불상은 풍만하면서도 당당하고 안정감 있는 신체 표현,
대좌와 광배의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조각수법, 몸에 밀착시켜 입은 얇은 가사,
발목으로 흐르는 옷주름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이상 안내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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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제4대보물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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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불상은 남산의 북쪽 금오봉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려가다가 작은 봉우리를 형성한 바둑바위의
남쪽 중턱에 있다. 자연 암반을 파내어 광배로 삼았는데 깍아내다가 그만둔듯 거칠다.
높이 7m로 삼릉계곡에서는 가장 큰 불상이다.
이 불상의 머리는 거의 입체불에 가깝고 그 아래는 선으로만 조각되어 있다.
풍만한 얼굴에 눈썹은 둥글고, 눈은 반쯤 뜨고 입은 굳게 다물었다.
민머리에 턱은 주름이 지고 귀는 어깨까지 큼직하다. 옷은 양 어깨까지 걸쳐져 있으며,
가슴부분이 벌어진 옷 사이로 속옷의 매듭이 보인다.
오른손은 엄지와 둘째, 셋째 손가락을 굽혀 가슴에 올렸고 왼손은 무릎에 얹었다.
결가부좌한 발 표현과 연꽃 대좌가 아주 특이하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 이상 안내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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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제5대보물 남산 용장사곡 삼층 석탑 (보물1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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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지으며 머물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몇 군데의 석축이 남아있어 절터였음을 짐작하게 해줄 뿐이다.
법당터보다는 높은 곳에 세워진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자연암반을 다듬어 아랫기단을 삼고, 그 위에 면마다 기둥새김
셋이 있는 윗기단을 설치하여 산 전체를 기단으로 여기도록 고안되었다.
층마다 몸체틀 하나에 지붕틀 하나씩 3층으로 쌓았는데,
지붕틀과 몸틀을 별도의 석재로 조성하였고 1층 몸틀은 상당히 높은편이고
2층부터는 줄어들고 있다. 윗부분이 없어진 탑의 높이는 4.5m밖에 되지는 않지만
하늘에 맞 닿을듯 높게 보여 자연미와 조화미가 돋보인다. 바위 위에 새긴
석탑으로써 통일신라시대 하대의 우수작으로 손꼽힌다.
- 이상 안내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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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제6대보물 신선암 마애 보살 반가상 (보물1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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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불상은 칠불암 위의 곧바로 선 절벽 위에 새겨져 있어 마치 구름위에 앉아 있는 듯이
보이는데, 머리에 삼면보관을 쓰고 있어 보살상임을 알수 있다.
얼굴은 풍만하고 오른손에는 꽃가지를 들고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서
설법하는 모양을 표형하였다
팔각형으로 보이는 대좌 아래로 옷이 흘러내리고 오른쪽 다리는 아래로 애려놓은 자세이다.
발은 연꽃 위에 있으며, 이처럼 유희좌를 표현하였음은 드믄 예이다.
그 아래에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이 조각되어 있다.
불상 높이는 1.4m이며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 작품으로 보인다.
- 이상 안내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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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제7대보물 칠불암 마애 불상군 (국보3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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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불상은 경주 남산 봉화골의 정상 가까이 위치한 마애 삼존불과 사방불로써' 칠불암
마애불 '이라고 불린다.
삼존불의 가운데에 있는 본존들은 앉아 있는 모습으로 미소가 가득 담긴
영감있는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통해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을 드러내고 있다.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는 옷은 몸에 그대로 밀착되어 굴곡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사방불들도 모두 연꽃이 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각기 방향에 따라
손 모양을 다르게 하고 있다.보살상이 본존을 향하고 있는 것이나 가슴이 길고 다리가 짧게
조각된것으로 보아 8세기경에 만들어진것으로 추정된다 .
- 이상 안내문 중에서... -
#. 칠불암 모습!
이상으로 7대보물을 뒤로하고 다른 보물들을 만난다.
♬.♪.
[ 남산의 또 다른 보물을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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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답사 개념도 ]
주요답사코스: 마애여래좌상 - 탑곡마애불상군 - 보리사마애석불 - 미륵곡석조여래좌상 - 헌강왕릉 -
정강왕릉 - 서출지 - 남산3층석탑 - 칠불암 - 용장사지 - 금오봉 - 상사바위 - 바둑바위 -
상선암 - 마애관음보살상 - 석조여래좌상 - 삼릉 (약 7시간3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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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경주남산 마애여래좌상 (09:30)]
(보물 제 198호)
#. 이 불상은 남산 동쪽 기슭 한 바위에 자연암을 0.9m나 파내어 감실을 만든 후 조각한 여래좌상이고
경주에서는 "할매부처"로 불린다.
머리부분은 깊은 돌을 새김으로 되어있고 두건을 덮어쓴것 같은데 귀 부분까지 덮혀있다.
얼굴은 약간 숙여져 있으며, 둥글둥글하게 조각하고 눈은 은행알처럼
두틈하게 나타내었다.
어깨는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고 옷은 양어깨에 걸친 통견(通肩)으로 하였다.
손은 옷 속에 넣어 표현되지 않았고 옷이 수직으로 흘러내려
사각형 대좌를 덮고 있다
이 불상은 배리 삼존불과 함께 신라석불로는 이른 시기인 7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으로 인하여 게곡 이름도 부처 골짜기(佛谷)이라고 부른다.
- 안내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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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에서 내리면 말 축사가 있고 그곳에서 답사를 시작한다.
#. 300m를 오르면 만날수있다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 경주 소나무 숲길이 게속되다가 산죽이 나타나며 그 속을 지난다.
#. 산죽길이 끝나면서 안내판이 서 있고 석불좌상을 만난다.
#. 누군가가 아침 일찍 막걸리와 생수를 가져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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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경주남산 탑곡 마애 불상군 (10:10)]
(보물 제 201호)
#. 이 곳은 신라시대에 신인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남쪽에 3층석탑이 있어 탑곡이라고 부른다.
마애조상군이라는 명칭은 높이 약 10m, 사방 둘레 약 30m의 바위와 주변의
바위면에 여러 상이 새겨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북쪽면에는 마주 선 9층 목탑과 7층 목탑 사이에 석가여래가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고, 탑 앞에는 사자 두마리가 새겨져 있다.
동쪽면에는 가운데에 여래상이 새겨져있고 주위에는 비천상, 승려상, 보살상, 인왕상이
새겨져 있다.
남족면에는 삼존불이 정답게 새겨져있고 그 옆에는 여래상과 승려상이 새겨져 있다.
서쪽면에는 능수버들과 대나무 사이에 여래조상이 새겨져 있다.
이와 같이 여러상이 한자리에 새겨진 예는 드문 일이며 지금까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34종이 확인되고 있다.
- 안내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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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안내비석!.
#. 일천바위쪽으로 오르는 등산로도 표지판을 만난다.
#. 옥룡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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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경주남산 보리사 마애 석불 (10:50)]
(보물 제 201호)
#. 이 마애불은 망덕사터와 벌지지 들판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에 있다.
앞으로 약간 기운 바위면을 파내고 불상을 조각하여
상당히 얇은 돋음새김이 되었다.
머리에는 나선형 머리카락이 표현되고 자비 넘치는 잔잔한 미소를 띄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된다.
- 안내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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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을 쪼개다 만 흔적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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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경주남산 미륵곡 석조 여래 좌상 (11:00)]
(보물 제 136호)
#. 이 불상은 남산 동쪽 기슭에 신라시대 보리사터로 추정되는곳에 남아 있는
석불좌상이다. 전체높이 4.36m 불상높이 2.44m의 대작이며, 현재 남산에 있는 석불 가운데
가장 완전한 것이다. 연꽃팔각대좌 위에 앉아 있는 이 불상은 석가여래좌상이다.
반쯤 감은 눈으로 이 세상을 굽어보는 모습이라든가 풍만한 얼굴의
표정이 자비로우면서도 거룩하게 보인다.
별도로 마련된 광배에는 연꽃대 바탕 사이사이에 작은 불상을, 그 옆에 불꽃 무늬를 새겼다.
손 모양은 오른손은 무릎위에 올려 손끝은 아래로 향하게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다. 특히 배 모양의 광배 뒷면에는 모든 질병을 구제한다는
약사여래좌상이 선적되어 있는데, 왼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다..
- 안내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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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사.
#.아름다운 불상을 뒤로한다.
#. 보리사 전경!
#. 보리사를 나서고 갯마을을 지나 도로를 따라 한동안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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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신라 헌강왕릉 (11:20)]
(사적 제 187호)
#. 이 능은 신라 제49대 헌강왕(제위 875 - 886)을 모신 곳이다.
봉분의 높이 4m, 지름 15.8m로 흙을 쌓은 원형 봉분토이며, 하단에 4단의
둘레돌을 돌렸다.
헌강왕은 경문왕의 태자로써 문치를 잘 하였으며, 이 시기에
처용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보리사 동남족에 장사지냈다고 기록되고 있다.
1993년 왕릉내부가 조사되었다.
- 안내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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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신라 정강왕릉 (11:40)]
(사적 제 186호)
#. 이 능은 경주 남산의 북동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신라 제50대 정강왕(제위 886 - 887, 김황)이
모셔진 곳이다
봉분의 높이4m,지름15m로 둥글게 흙을 쌓은 봉분토이다.
정강왕은 헌강왕의 아우로 886년 7월 왕위에 올랐으나 887년 7월에 병으로 죽어
왕위에 있던 기간이 만 1년밖에 되지 않는다.
- 안내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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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전 정문 모습이다.
통일전에는 들리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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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서출지(書出池) (11:50)]
(사적 제 138호)
#. 이 곳은 까마귀가 신라 소지왕의 목숨을 구한 전설이 서려있는 연못이다.
어느날 소지왕이 궁 밖으로 거동하니 쥐가 나타나 "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라 " 하였다.
왕은 그 말대로 이 못에 이르렀을때 한 노인이 나타나 " 거문고 갑을 쏘시오 "라고
쓴 글을 바쳤다. 이에 왕이 궁으로 돌아와 활로 거문고 갑을 쏘니 그 속에
숨어있던 궁주와 승려가 화살을 맞고 죽었다.
그 뒤로 이 못은 서출지라 하고 정월 보름에 까마귀에게 찰밥을 주는 " 오기일(烏忌日) "
이라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이 연못가에는 조선 헌종때 임적이 지은 이요당이라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건물이 있다.
- 안내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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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박2일 촬영시 강호동등 출연진이 이곳에서 칼국수를 먹었다고 광고하고 있다.
#. 금오봉으로 오르는 통일전쪽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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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경주 남산리 삼층석탑 (12:00)]
(보물 제 124호)
#.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경 조성된 것으로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형식을 달리하는 두 탑이 동시에 마주보고 서 있다.
높이는 동탑이 7.04m, 서탑이 5.85m로 차이가 있다.
- 안내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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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동 한옥마을 길에서 길거리 카페도 만난다.
[(▼.아래) 傳 염불사지 삼층 석탑]
#.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산불방지를 위해 감시원이 출입자를 체크하고 있다.
#. 이곳부터는 짐을 져 칠불암으로 오르는지 지게가 뉘어져 있다.
#. 예쁜 암자 칠불암에 오른다.
#. 이 창 안에서는 한 여승이 그림을 그리며 인사한다.
#. 칠불암에서 바라보는 토함산 모습이다.
칠불암을 뒤로하고 능선에 올라 금오봉쪽으로 향한다.
이영재를 지나고 금오봉이 가까워질때즘에 용장마을쪽으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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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경주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14:40)]
(보물 제 187호)
#. 이 불상은 용장사터에 있는 미륵장육상으로 추정되는 석불 좌상이다.
삼륜대좌 위에 모셔진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1932년 일본인들에 의해 복원된것으로
머리 부분은 없어졌다.
손과 몸의 일부가 남아있는데 대좌에 비해서 불상은 작은 편이다.
목에는 뚜렷한 삼도가 있고 어깨는 넓지 않고 다소 좁은 편이다.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있으며,
좌측 어깨에는 매듭 지너진 가사끈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이 석불은 특이한 둥근 형태 대좌 뿐 아니라 석불 자체의 사실적 표현이
작품의 격을 높여준다.
용장사는 신라 유가종의 대덕 태현이 주지로 있었다.
- 안내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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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용장사지 마애 여래 좌상 (14:40)]
(보물 제 913호)
#. 용장사는 조선 세조 때 김시습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은 곳이다.
이곳 능선 위에 용장사곡 삼층 석탑이 있고, 이 마애불 바로 앞에는 삼륜대좌불이 있다.
이 불상은 자연 암벽을 이용하여 조각하였는데, 머리 둘레의 두광과
몸 둘레의 신관을 2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얼굴은 풍만하고 머리에는 나선형 머리카락을 표현하였으며 귀는
눈에서 귀까지 길게 표현하였다.
왼쪽 어깨 바깥부분에 글씨가 있는데 ' 태평 2년 5월... '에
무엇인가를 하였다는 내용인데 마멸이 심하다.
조각수법으로 보아 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 안내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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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에서 피어 나는 아름다운 소나무들...
#. 고위봉쪽 모습들...
#. 금오봉쪽 모습...
#. 대 연화좌대 모습!
#. 임도길끝에서 금오봉 오르는 안내판을 만난다.
#. 정상가는길에 만나는 비파골 안내판!
#. 금오봉 정상석 모습!
#. 산 중턱에 마애불상이 보인다.
#. 산 아래 삼릉쪽 모습이다.
#. 상사바위다.
상사병에 걸린 사람이 이 바위에 빌면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경주 시내 모습!
#. 바둑바위 모습이다.
1,300년이 흘러서인지 바둑판은 마모되어 형체를 알아볼수 없고 이름만 전한다.
#. 상선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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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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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곡 어귀에 3개의 능이 있어 삼릉계라 하는데 게곡이 깊고 여름에도 찬 기운이 돌아
냉골이라고 부른다. 이 계곡에는 11개소의 절터와 15구의 불상이 산재하여
남산에서 가장 많은 유적이 있으며 금오산 정상으로 이어지기에 찾는 사람이 많다.
이 속고여래좌상은 1964년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약 30m 남쪽
땅 속에서 머리가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특히 이 부처님은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려 매듭진 가사끈과 아래 옷을 동여맨 끈,
그리고 무릎 아래로 드리워진 두 줄의 매듭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용장사 삼륜대좌불과 함께 복식사 연구의 중요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불상은 손과 머리가 파손되었으나 몸체가 풍만하고 옷주름이
유려하여 통일신라시대의 우수한 조각품으로 평가된다.
- 안내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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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삼릉계곡 마애관음 보살상 (16:30)]
(유형문화재 제 192호)
#. 이불상은 남간의 삼릉계곡에 있으며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음새김 되었다.
풍만한 얼굴에 머리 위에는 삼면보관을 썻는데, 앞에 작은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
관음보살임을 알수 있다.
입술에는 아직 붉은색이 남아 있으며 연꽃으로 된 대좌위에 서 있는데,
목걸이를 하고 허리 아래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양 다리에
U자 모양으로 드리우고 있다.
왼손은 정병을 들고 오른손은 가슴에 들어올려 손가락은 밖으로 향하고 있다.
- 안내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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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경주 남산 배리 삼릉(16:40)]
(사적 제 219호)
#. 이 곳에는 신라 제8대 아달라왕, 제53대 신덕왕, 제54대 정명왕이 한곳에 모여있어
삼릉이라고 한다.
아달라왕(재위 154 - 184)의 능의 크기는 높이 5.4m, 지름 18m이다.
효공왕이 자손이 없이 죽자 백성들이 헌강왕의 사위인 신덕왕(재위 912 - 917)을
추대하였다. 견훤과 궁예의 침입이 있어 싸움에 진력하였다.
정명왕(재위 917 - 924, 박승영)은 신덕왕의 아들로
고려태조 왕건과 손잡고 견훤의 대야성 공격을 물리쳤다.
- 안내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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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릉 옆에 있는 경애왕릉도 다녀본다.
도롯가로 나오며 탐방을 마무리 한다. 칼국수집이 많다.
한참을 기다려 500번 좌석버스를 타고 경주역으로 나오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신경주역으로 온다.
[ 불국사 주변 늦가을 모습들.... ]
- 끝 -